언론유감

조중동의 자가당착

olddj 2004. 1. 15. 02:23
1. 세습에 관하여  

꼴통수구 숭미 친일집단 조중동이 북한에 대해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일정부분 역사성이 있다.

조중동의 존립기반 자체가 친일 숭미에 있기에 북한의 반일 반미와는 아예 양립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일제 때 친일을 한 사실은 어느정도 그들도 인정하고 있기도 하고 (물론 철저히 개인적으로 간헐적으로 피력하는 정도지만) 이후 반민특위가 와해되고 조선 동아가 복간을 하며 미군정하에서는 거기에 철저히 길들여졌다.  

그러기에 '여중생 사망사건'은 조선일보에 그리 큰 뉴스거리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중앙일보의 김영희 같은 이는 이라크 파병을 전투병위주 대규모로 해서 미국의 비위를 맞추자는 헷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숭미의 증거이다.   최근에는 국회 예결위에서 친일인명사전 편찬 예산이 삭감된 것이 조중동에 의해서는 전혀 이슈화되지 않는 것은 그들의 과거 역사에 대한 은폐기도이다. 친일의 증거이기도 하다. 독도문제에 핏대를 올리는 것은 과거를 숨기기 위한 면피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평화시대에 말로만 하는 반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웃기게도 이들이 그리 욕을해 마지 않는 북한의 전근대적인 요소인 '세습'에 대해서는 서로 아주 닮은 꼴이다. 조선일보-방씨, 동아일보-김씨, 중앙일보-홍씨로 이어 내려오는 세습의 모양새는 마치 김일성-김정일의 세습을 연상케 한다. 언론뿐이랴. 우리나라 재벌 또한 세계에 유래없는 세습체제이다. 삼성-이씨, LG-구씨 허씨, 현대-정씨, SK-최씨...... 조선일보 방사장의 경우에서 보듯이 그것은 대부분 불법 편법을 동원한다. 그들이 사익추구집단이라는 증거이다.   물론 공익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익과 사익이 충돌할 때는 가차없이 사익을 택한다. 자전거일보가 문제가되고 신문고시가 시행될 때, 끝까지 날을 세우며 게기던 그들이다. 공정거래에 대한 개념도 없는 인간들이 자본주의를 이야기한다. 조세포탈범들이 경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자가당착이다.

 언론은 사회의 공기(公器 a public institution; [신문 따위] a public organ[instrument  공기를 남용하다 abuse public instruments] 출처: 네이버)일진대 세습이 왠 말인가.·  
자가―당착(自家撞着)[명사] 언행의 앞뒤가 맞지 않음. 모순당착. 자기모순  

우리가 저들 신문을 믿지 못하는 이유이다.

2. 사회적 약자 보호와 명품소개의 상관관계  

카드빛으로 인해 자살한 사람들을 아주 선정적으로 보도한다. 사회적 약자에 아주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섹션으로 들어 가 보면 명품 소개 기사가 판을 친다. '아름다운 가게'가 중앙일보의 아주 큰 이미지광고가 된다. 다 좋다.  결국 복지예산이라는 것도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다. 부자는 세금을 많이 내고 가난한 사람은 세금을 적게 내고 하여 예산이 나오는 것이다. 그 예산으로 국민전체의 복리증진에 쓰이는 것이다. 그 혜택은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최소한 골고루) 받아야 함은 물론이다. 이것을 '부의 재분배효과'라고 하던가? 뭐 하여튼 그것이 상식이다.  

세금포탈에 대해서는 앞서 이야기했으니 생략하기로 하고, 조중동의 보도태도나 입장은 언제나 가진자, 기득권을 대변한다. 비근한 예로 강남 아파트의 보유세를 올린다는 것에 입에 게거품을 물고까지는 아니지만, 비판적인 기사들이 나오던 것을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결국 광고주의 입김에 휘둘리는 것이다. 이재용의 편법상속에 대해서도 쉬쉬하는 것이 조중동이다. 삼성생명 해직자에 대한 기사는 '이건희회장 불우이웃돕기 100억'기사에 파 묻힌다. 중앙일보는 외국잡지에 나온 이건희에 대한 묘사에서 '은둔'을 '수도자적'으로 번역하는 묘한 꼼수를 통해 기득권이자 특수관계인 삼성을 옹호하기도 한다. FTA와 관련하여 지면을 도배질하며 반저널리즘적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대선 비자금 수사를 빨리 끝내야 한다고 한다. 재벌들이 돈주고 뺨맞는 격이라고도 한다. 이런 것들이 오늘날의 조중동의 모습이다.  즉, 지속적인 기득권 옹호를 통해서만이 생존할 수 있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런데 빈민을 위한다고? 사회적 약자에 관심 기울여야 한다고?  

자가당착이다. 적어도 조중동은 (언론자유측면에서)그런 기사를 쓸 수는 있지만, 그런 자격은 없다.

3. 조직의 일사불란함과 항명  

스포츠조선의 기자가 도박의 폐해에 관한 기사를 썼는데 데스크에서 채택하지 않아 항의하는 과정에서 상사와 밀고 당기는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2개월인가? 징계를 받았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조선일보의 계열사인 스포츠조선임을 감안할 때 아주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였다.  과연 조중동에 나오는 기사들에 얼마나 일선 기자들의 의견이 포함되는 지 모르겠다. 얼마나 편집권이 독립되어 있는 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정도 짐작은 간다.  

조선일보의 김대중은 과거 "사장! 사설은 토씨 하나 못 고칩니다!"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말은 둘러치면 "사장, 내가 다 알아서 쓴다."는 말과 같다. 그렇게 김대중은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킨 것이다. 아주 고단수의 어필이었던 것이다.  

이번에 출마하기 위해 동아일보를 그만 둔 양기대차장의 인터뷰에 이런 말이 있다. -기자로서의 삶에 대해 한마디한다면 .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때로는 스스로 권력이나 회사의 눈치를 살펴 왜곡은 아니라도 '정도'의 기사를 쓰지 못했던 때가 왕왕 있었다. 독자와 국민들에게 깊이 사죄드리고 싶다. 또 매섭고 냉혹하게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려고 나름대로 애썼지만 당하는 쪽이 수긍할 만큼의 균형감과 합리성, 그리고 팩트에 근거한 기사를 썼는지 반성할 점이 많다."  

이는 무었을 말하는가. 권력이나 회사의 눈치를 살피다니.   조중동은 하나같이 이번 외교관 사건에 대하여 잘못을 저지른 외교관들 편을 들고 청와대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다.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자가당착이다. 이것은 1번에 이야기한 숭미와도 연결되어지는 이야기이다.  

더 많은 '자가당착'이 있으나 결국은 어떤 순환고리가 있다. 그 고리는 너무도 단단하여 자칫 무너지지 않을 듯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말로 표현하기는 곤란하지만 그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안티조선'이 생긴 이래 내부결속력이 더 강화되었다고 한다. 그 말을 둘러치면 결국 조선일보는 '고립화'의 길을 걷고 있다. 이는 자초한 것이다. '자가당착, 자기모순'을 단기적으로 극복하려 하면 그 방법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일종의 자기최면.  

'자기최면'이라는 뽕주사를 맞으며 오늘도 조중동은 간다. 그 끝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