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권태’를 허하라

olddj 2009. 8. 16. 16:13
 중학교 시절에 이상의 ‘권태’라는 수필을 읽었다. 호기심이 동해서 단숨에 읽었댔는데, 예의 그 <수학능력시험을 위한 필독 한국대표수필>에도 나온다. 그는 “어쩌자고 이렇게 한이 없이 초록색 하나로 되어 먹었노?”라며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권태의 기제로 받아들인다.

‘권태’란 자유가 최고조로 방만한 상태가 아닐까?

이상이 환생하여 북한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 본다면 다른 단어를 끄집어 낼 지도 모른다. 그 큰 빌딩의 숲, 아파트 숲, 시멘트 구조물을 바라보며 ‘광기’를 생각하지 않았을런지. 이상은 자신의 생활을 ‘권태의 극권태’라고 하였으나 저 시멘트 숲을 바라본다면 ‘극극권태’를 논하였을 지 모를 일이다. 피곤하고 지겹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에서도 권태를 느꼈던 이상은 노는 아이들조차 볼 수 없는 요즘을 ‘극극극권태’라 하지나 않을런지.

문명의 이기들은 우리를 권태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더우면 선풍기를 틀고 에어컨을 튼다. 틀면서 다음달 청구될 전기요금을 생각한다. 잠시라도 권태로울 틈이 없다. ‘우리나라’ 현대인의 특징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바쁘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바쁘기는 바쁜데 왜 바쁜지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정말 권태로울 틈이 없다. 무어라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코라도 베일 일이다.

그 유명한 청와대 ‘관계자’께서 서울 근교 그린벨트를 대부분 해제 한다고 말씀하셨다. 박정희의 정책 중 잘 된 것을 들라하면 아직까지도 ‘그린벨트 정책’을 드는 사람이 많다. 링크한 연합뉴스의 사진을 보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그린벨트 사진’을 올려 놓았다. 제대로 안지켜지면 제대로 지켜지도록 해야하는 것이지, 현재의 불법을 합법화 시킨다는게 도무지 이해가지 않는다.

어떻게 된 나라가, 어떻게 된 대통령이 국민이 권태로울 자유도 주지 않는다는 말인가.

나에게 우리에게 권태를 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