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유감

23년 전 한국일보의 정래혁 특종과 이명박 사건

olddj 2007. 7. 17. 00:04
한국일보 특종 - 정래혁 사건

1984년 6월 20일 오후, 일부 신문 편집국에 투서가 날아든다. 정래혁 당시 민정당 대표가 부정축재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진정서, 자료, 증빙 등이 들어있었다. 이는 정치적 라이벌 관계에 있는 4성장군 출신이자 전직 장관 문형태씨가 보낸 것이었다.

23일 정씨는 출입기자들에게 비공식 해명을 하고, 25일 민정당 대표직을 사임한다. 김용태 민정당 대변인은 "공직자 재산에 등록된 정 전대표의 재산을 조사한 바 5공 출범 이후에 증식된 것은 없었다"고 밝히고 "민정당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남을 모해하는 투서행위를 근절시키겠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투서한 문씨를 연행해 조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신문들은 문씨와 정씨의 40년 적대관계를 조명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정씨는 별 문제가 없고 문씨의 투서행위만 잘못되었다는 쪽으로 여론을 몰아가려 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일보는 직접 기자들을 풀어 투서내용을 주민등록과 등기부를 중심으로 현장 확인하였고 그 내용으로 특종을 내게 된다. ☞ 한국일보 1984년 6월 30일자 [정치 투서사건 취재기자 방담] pdf

이를 시작으로 모든 신문에 의해 '부정축재현장'이 크게 다루어지게게 되고, 그로 말미암은 엄청난 국민 여론으로 인해 정래혁씨는 '전 재산 사회환원, 의원직 사퇴, 민정당 탈당, 모든 공직 사퇴'를 밝히게 된다. 문씨는 정씨의 처벌 불원 의사에 따라 처벌을 않기로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한국일보 1984년 6월 30일자 1면

......이렇게 해서 특종의 첫 포문이 열렸고 경찰기자들은 관례대로 철야특근이 계속됐다. 그 특종 시리즈는 ▲丁씨 부동산 '투서'와 거의 일치 ▲ 丁씨 一家 재산증식은 부동산투기의 전형 ▲ 싼 땅 매입, 요지로 환지 ▲ 丁씨 재산증식과정 아직도 의문 등이다.

丁씨의 권력으로도 주민등록과 등기부의 위장은 할 수 없었던 것. 다음날도 江南에서 또 다른 재산을 찾기 위해 불이 나게 뛰었는데, 특히 정씨 재산의 최초 '소유권자' 이모 씨를 찾기 위해서는 9군데의 동사무소를 뛰어다니기도 앴다. 그러나 정작 기사는 강남지역에서보다는 호주머니 속에 든 32장의 정씨 일가 주민등록 등·초본과 등기부등본에서 나왔다.

까맣게 적혀있는 정씨 일가의 주민등록 등·초본은 정씨 일가의 재산증식이 전형적인 복부인 수법을 닮았다는 사실을 나타냈고 등기부등본에도 환지 때 노른자위 땅만 차지했다는 사실이 역력히 나타났으며 지목변경을 하여 재산을 증식했다는 것도 명백히 드러났다.

정씨 일가는 예외 없이 주민등록의 이전을 밥먹듯이 했는데, 둘째 아들은 주인도 모르는 엉뚱한 집에 동거인으로 들어가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건물도 없는 빈터에 주민등록을 옮겨 놓기도 했다.

게다가 세무당국이 수많은 소유권 이전 때 즉각 증여 여부를 조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나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취재에 불응하여 이 부분에서는 미흡하나마 의문점만 제시하고 말았다. .......(당시 한국일보 [사회부 경찰팀 정래혁 부정축재사건 특종기] 중)



이명박과 정래혁


<정래혁 부정축재 사건>에 대한 길윤석의 책과 과거 신문들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내 군입대 직전이었는데,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고향의 '송덕비'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투서 사건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참으로 많은 것이 얽혀있다. 최근 상황과 관련지어서 책을 하나 지어도 되겠다.

위에 인용한 한국일보 기사 중  중에서 '까맣게 적혀있는 정씨 일가의 주민등록 등·초본',  '예외 없이 주민등록의 이전을 밥먹듯이', '어떤 경우에는 건물도 없는 빈터에 주민등록을 옮겨 놓기도'라는 표현이 어쩌면 그렇게 이명박과 판박이인지 고소를 금치 못하겠다. 사실 이명박이 땅투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시대였다.

그래서인지 이명박은 5월 29일 한나라당 경제분야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돈 있는 사람들이 더 좋은 곳으로 옮기거나 투기를 목표로 (집을) 옮기는 것은 정부가 그렇게 관여할 일이 아니다. 세금만 잘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래혁이 1990년 6월14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60,70년대에는 대부분의 공무원이 땅투기를 했는데 나만 문제삼는 것은 부당하다", "변호사는 투기해 본 일이 없느냐"고 한다. 투기에 대한 생각에 있어서만큼은 이명박에게서는 적극적 포스가, 정래혁은 소극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어떻게 될 것인가

1984년, 한국일보는 독재 정당 당대표의 정치적 라이벌이 투서한 내용을 사실로 확인시켜 특종을 했고, 다른 신문들도 거기에 경쟁적으로 가담하여 국민 공분과 여론을 이끌어내었다. 투기했던 사람은 그 화려한 과거를 뒤로하고 의원직과 모든 공직을 사퇴했다. 투서했던 사람은 풀려났다.

23년이 흐른 2007년, 이제 주민등록 등초본을 남이 함부로 떼지 못하는 시대다. 투기 의혹이 있는 사람은 초본 뗀 것을 가지고 '미쳐 날뛰고' 있다. <경향>과 <한겨레>는 연일 경쟁적으로 특종을 하고 있으나, 조중동을 비롯한 대다수는 이명박과 함께 미쳐 날뛰고 있다. 검찰은 초본에 관련된 사람들을 구속했다.

80년대는 커다란 역사의 변곡점이었다. 이명박과 한나라당 그리고 조중동의 역사 흐름을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가 한없이 가소로울 뿐이다.


* 사실관계는 거의 전적으로 길윤석 (현 서울경제신문 편집국 국차장 겸 종합편집부장)의 <편집국 25시>(1994 2월, 비봉출판사) 182~190쪽 내용을 요약했다. 좋은 책을 지으신데 감사드린다.
* 제시된 신문 이미지와 링크된 pdf 파일의 출처는 카인즈(http://www.kinds.or.kr)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