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잡담

영화를 보지 않는 취미

olddj 2007. 8. 19. 07:27
영화에 대한 논란으로 인터넷이 시끌벅적하다. 아니 이제 좀 조용해졌나?
입달린 사람들은 다 한마디씩 하는 형국이다.
흠... 그렇담 나도??? ^^;

그래서 좀 적다가 아무래도 주제넘는(?) 일인 것 같아 포기했는데,
예전에 영화에 관해(?)썼던 글이 생각나서 찾아보니,
어떻게 어떻게 인터넷에 보관되어 있다.

2001년 12월 27일에 쓴 글이다.
요즘도 별반 다를 것은 없어서 그대로 옮긴다.

짤방은 영화 <마농의 샘> 음반 표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를 보지 않는 취미

초등학교 시절, 이소룡의 영화 '정무문'을 보고 집으로 돌아 오면서 나는 웃통을 벗고 계속 소리치며 허공에 발길질했다. 예의 이경규가 흉내내는 그 괴성을 지르면서 말이다. 전봇대에 원투스트레이트를 먹이기도 하고, 지나가는 개를 겁주기도 했다. 앙상한 갈비뼈의 초등학생이 그랬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웃기도 하고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으리라.

'람보'가 나온 것이 언제였더라? 어쨌든 내 머리 속이 미처 영글지 못했을 때일 것이다. 1초에 다섯 명 정도씩 '베트콩'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그 만화같은 설정에 헛웃음을 웃으면서도 스트레스 해소 하나는 잘했다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신혼초에는 엄청난 비디오를 빌려다 보았다. 주로 척노리스, 아놀츠슈와제네거, 브루스윌리스, 캐빈코스트너 기타등등이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 빌려 보았다. 폭력이나 액션 영화 중 90년대 초반에 나온 것들은 거의 다 보았을 것이다. 당시에는 나와 같은 비디오중독증 환자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 같다. 아, 물론 지금도 그런 사람 많더라마는^^

신혼초에 극장에서 본 영화 중에 기억이 남는 영화는 '마농의 샘'이라고 하는 프랑스 영화인데, 그 영화가 너무 좋아 영화관을 나서자마자 레코드방에서 오리지날 사운드트랙 음반
구입해서, 몇 날 몇 일을 계속 그 판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 줄거리도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내 머리속에는 장면장면의 풍경과 음악들이 가끔씩 생각이 난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영화에 대한 흥미가 없어졌다. '서편제'라는 영화를 보지 않았던 그 즈음이 내가 영화를 멀리하기 시작한 때일게다. '신드롬'이라는 낱말이 어울릴 정도로 온갖 언론에서 떠들고, 정치인이든 시정잡배든(똑 같은 말인가?^^) 누구든 서편제를 보지 않으면 약간 이상한 넘 취급을 받을 때였다. 나는 그 영화를 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묘한 쾌감이 들었다.

아내는 몇 번 나를 조르다가 결국 비디오를 빌려서 그 영화를 보았는데, 결국 나는 그 비디오도 보지 않았다. 아내는 뭐라 투덜거렸지만 예의 그 묘한 쾌감이 있었다. 뭐랄까, 군대시절 훈련에서 열외된 느낌이랄까? 산의 정상에서 "세상은 다 내 것이야!"라고 소리지르는 치기랄까? 그것도 아니라면 시험치는 날에 책없이 빈 손으로 학교에 가는 홀가분함일까?

이후에 몇 편의 영화를 남의 손에 이끌려 보러 간 적은 있다. '전태일'이나 '박하사탕'같은 영화였는데, 박하사탕은 아주 재미있고 감명깊게 보았다. 어짜피 두 영화 다 안본다고해서 쾌감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던 것이기에 보았던 것이고 후회는 없다. 그 이후,

나는 '쉬리'를 보지 않았다.
나는 'JSA'를 보지 않았다.
나는 '친구'를 보지 않았다.

' 친구'라는 영화가 2001년의 최고 히트상품이 되었다고 한다. 참 웃기는 일이다. '내가 니 시다바리가?'와 '칭구 아이가?'하는 말이 2001년 최대의 유행어라고 한다. 세상이 웃기는 건지 내가 웃기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 또 '영화를 보지 않는 취미'때문에 한참을 즐거워한다.

누가 나더러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러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할 지 모르겠다. 못이기는 체 따라갈 지도 모른다. 그 영화는 보는 즐거움이 안보는 즐거움보다 클 것 같다. 하지만 '친구'는 비디오로 출시되어도 안 볼 것이다. 800만이 아니라 1600만이 보았다하더라도 안 볼것이다.

영화를 보지 않는 취미, 얼마나 고상한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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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농의 샘 영화음악]

주제곡은 1편에서 꼽추 쟝 이 이사를 와서 하모니카로 불고, 성악가인 마농 의 엄마가 노래하는 그 곡이 바로 Main Theme 인데, 2편의 Ending Credits 까지 여러 번 계속 반복해서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잔잔하게 진행되면서 쓸쓸한 분위기를 주는 Main Theme 곡은 마치 Papet 이 말년에 느끼는 인생무상의 여운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데, 이곡은 그 유명한 베르디(Giuseppe Verdi/1813-1901/이태리)의 오페라,‘La Porza Del Destino’의 서곡에서 그 Theme 을 인용한 것으로 엄밀히 말하면 오리지널 스코어는 아닌 셈이다.

이 Theme 을 근간으로 하여 전체 OST 를 만든, Jean Claude Petit(1943, 프랑스)는 이미, 1970년대 초부터 약 70 여 편의 프랑스 영화 음악을 만든바 있는 중견 작곡가인데, 이 영화에서는 Roger Legrand 과 공동으로 음악 연출을 하면서 마치 베르디의 한 비극적인 오페라 같은 분위기를 잘 자아낸 것이 이 영화음악의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출처 : 영화음악 이야기 @ 김제건  http://blog.naver.com/jaygun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