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에 이상의 ‘권태’라는 수필을 읽었다. 호기심이 동해서 단숨에 읽었댔는데, 예의 그 에도 나온다. 그는 “어쩌자고 이렇게 한이 없이 초록색 하나로 되어 먹었노?”라며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권태의 기제로 받아들인다. ‘권태’란 자유가 최고조로 방만한 상태가 아닐까? 이상이 환생하여 북한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 본다면 다른 단어를 끄집어 낼 지도 모른다. 그 큰 빌딩의 숲, 아파트 숲, 시멘트 구조물을 바라보며 ‘광기’를 생각하지 않았을런지. 이상은 자신의 생활을 ‘권태의 극권태’라고 하였으나 저 시멘트 숲을 바라본다면 ‘극극권태’를 논하였을 지 모를 일이다. 피곤하고 지겹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에서도 권태를 느꼈던 이상은 노는 아이들조차 볼 수 없는 요즘을 ‘극극극권태’라 하지나 않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