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잡담

대학생이 '벼슬'이었던 시절 이야기

olddj 2007. 5. 18. 12:24
전두환이 정권을 잡고는 대학생 정원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내가 82년에 입학한 지방 국립대학도 내 동기가 5,000여명 되었으니 가히 엄청난 숫자라고 할 수 있다. 그게 부산이었는데, 5,000명 곱하기 4학년 플러스 알파(대학원생 등)였다고 생각해보라. 당시 부산 인구가 200만~300만 언저리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동아대니 경성대니 동의대니 부산외대니 수대, 해대에 여러 전문대까지 합치면 이거야말로 길에서 받히는 넘이 다 대학생이라...

그때가 지방대학의 값어치가 떨어지기 시작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전두환이 정권을 잡은 80년부터라는 것이다. 대전에 할아버지가 사셨던 관계로 대전에 자주 갔었는데 70년대까지만 해도 충대(충남대)하면 연고대와 버금가는 수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적어도 그 지역에서는 말이다. 비슷한 실력에서 사정이 허락하는 넘들은 연고대를 선호하는 것이고, 각종 장학 혜택이 많고 등록금이 거의 연고대 1/3수준인 국립대학은 시쳇말로 '머리는 존데 뒷받침이 안되는' 아해들이 가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정형화하거나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당시를 산 사람들은 이해할 만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대학생'이 벼슬 비스무리한 시대였다. 전두환은 소위 '학사경고'라는 제도를 도입하여 대학생들의 졸업을 어렵게 하는 제도를 만들었으나, 흐지부지되고 말았다.(졸업정원제) 그게 오늘날 얘기가 되는 '386세대'인 것이다. 그리 따지면 '386세대'는 다름아닌 전두환의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당시에 있었던 재밌는 얘기를 두 가지만 해 보겠다.

입학을 해서 지도교수 면담이 있을 때였다. 지도교수는  모 대기업에서  회사생활을 하다가 접고 교수가 된 양반이었는데, '테니스'광이었다. "자네는 무슨 운동을 하는 게 있나?"라는 질문에 "저는 해질 녘에 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 도는 마라톤이 취미입니다. 마라톤 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고 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때 그 교수의 똥 씹은 표정이란! 그러나 25년 여가 흐른 지금 마라톤은 정말 훌륭한 스포츠나 여가 선용으로 그 첫 머리에 든다. 그 양반이 아직도 테니스를 최상의 운동이라고 주장할 지 모르나, 당시 내 주장에 일리가 있었음은 다 아는 사실일게다.

하나 더.
술을 거하니 마시고 차비가 없어 집까지 걸어 갈 때였다. 발바닥에 우지끈 밟히는 것이 있었다. 간판집 앞에 내어놓은 간판을 밟았다. 당장 간판집 주인이 뛰어나와 변상하라고 난리를 쳤다. 나는 간판집 앞에 내어놓은 간판에게 죄를 물어라 하고 뻗대었다. 그러자 간판집 주인이 누그러지며 "부산대학교 학생이우?"라고 물었다. "그렇소."하며 학생증을 내 보이자, "잘가쇼..."라며 보내 주었다.

80년대의 기억이란 대충 이런 것이다.
대학생이 벼슬이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생은 뭔가? 그 의미를 스스로 찾으려고 하기나 하는가?

잘난 것은 없지만, 그래도 인생이나 역사에 책임감을 가져줬으면 싶다.
우리 대학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