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잡담

그게 얼마나 암울한 이야기인줄 알아요?

olddj 2004. 7. 28. 07:56
1974년 겨울인가? 어쨌든 동아일보 광고사태 때 였지요. 초등학교 겨울방학을 맞아 대전 할머니 댁에 있던 나는, 고모들 심부름해서 용돈 받는 재미(그 때는 '티눈고'라는 티눈치료제가 깡통식으로 나와서 거기에 동전을 넣으면 뿌듯했지요) 고구마 삶아서 김치 얹어 먹는 재미, 망하신 할아버지 회사 전표 뒷면에 낙서하던 재미 등등을 만끽하고 있었지요. 지금은 경망스러울 정도로 그 때가 그립습니다. 어쩌면 고향의 모습이겟지요. 물론 저도 지금은 찾을 수 없습니다만...

당시 미혼이셧던 고모 세 분이 저와 형을 불러서 심부름을 시키셨습니다. 아마 그 때 당시 중구 은행동이었을 거에요. "여기여기 동아일보 대전지사에 가서 이 봉투를 전하고 오라. 미행을 조심하라"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첩보영화 같았죠. 어린 나이에도 그런 비밀 결사같은 거에는 좀 으쓱했었나 봅니다. 경망스런 나 말고 형은 집을 나서자 그 봉투를 살짝 열어 보았죠. 저 혼자라면 그렇게는 못했을 겁니다. 거기에는 <한국적 민주주의=? 대전시민>이라고 까만 사인펜같은 걸로 적혀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도 동아일보의 그때 마이크로필름을 보면 확실히 있을 거에요.

멋진 바바리코트를 하고 있는 기자? 분에게 그 봉투와 돈(물론 봉투속에 있었습니다)을 드리고 정말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나왔습니다. 조심조심 돌아 오니 고모들께서 수고했다면서 용돈을 주시더군요.

가정사가 너무 깊이 나올까봐 더 이야기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제 프라이버시니까요.

그러나 이후 동아일보는 어떻게 했나요? 동아투위가 어떻게 고생해 가며 언론의 자유를 조금씩이나마 향상시켰는 지는 여러분이 알아 보세요. 물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요. 그 암흑의 시대, 암울한 시대에서 컸습니다.

조중동이 넓게는 우리나라의 언론이 그 암울한 시기에 한 것이라고 그들이 하는 말마따나 '행간에 의미를 읽도록'한 것 뿐 입니다. 아니 쉽게 말하면 그들은 파쇼정권의 앞잡이었지요. 거기에 조금이나마 불만이 있으면 강제해직하기도 하였지요. 정권과 언론사주의 협잡에 의해서.

전여옥이 쓴 글에 난지도로 끌려가면서도 살아 남아야 했다는 유명한 글이 있습니다. 솔찌기 권영길도 5공 때 기자를 했죠. 지금 언론사 윗대가리의 거의 대부분이 '그래도 살아 남았다'는 사람들 아닙니까?

어제 몇 가지 궁금한 기사 내용이 있어서 알아 보았더니, 빨라야 1999년 입사한 기자들이 놀랍게도 왜곡을 해 놓은 것을 보고 정말 슬픕디다. 이 양반들이 과연 누구에게 배우고 있는 지, 그리고 이 양반들이 존경한다는 선비정신의 기자에는 도저히 가까이 가지 못하는 것인 지 말이지요.

세상에는 늘 선과 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걸 모르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양심을 속이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양심을 속이고 큰 소리치는 이 시대는 일제와 박통 전통의 군사독제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며, 그 이유를 쓸 수도 있지만 길어지니 이만 줄이죠. 다만 이런 암울한 시대를 내 새끼들에게는 물려 주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