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음주 채팅, 음주 립플링, 음주 포스팅

olddj 2008. 3. 23. 06:11
유홍준이 쓴 <화인열전>의 첫 머리가 김명국이다.

영조 때 중인 출신 문인이었던 정내교는 "그가 그림을 그릴 때면 반드시 실컷 취하고 나서 붓을 휘둘러야 더욱 분방하고 뜻은 더욱 무르익어 필세는 기운차고 농후하며 신운이 감도는 것을 얻게 된다. 그래서 그의 득의작 중에는 미친 듯 취한 후에 나온 것이 많다"고 했다.

남태응은 약간 어긋진 논평을 한다. "술에 취하지 않으면 그 재주가 다 나오지 읺았고, 또 술에 취하면 취해서 제대로 잘 그릴 수가 없었다. 오직 술에 취하고 싶으나 아직은 덜 취한 상태 [欲醉未醉之時]에서만 잘 그릴 수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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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이외수는 방탕한 생활을 즐겨 했다. '술'은 빠질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가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 금주금연 반 토굴생활을 했다는 건 알려진 이야기다. 시인이자 선비인 조지훈의 술에 대한 얘기를 여기저기서 읽다 보면 '글쓰기'와 술은 따로 떼기 힘든 것임에 분명하다. 이건, 고은, 남재희 등 아직 살아 있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들에게도 벗어날 수 없는 혐의다.

컴퓨터가 내 앞에 앉아 있은 이후로 불가피하게 음주 후 모니터를 만난다. 음주 후에도 만나지만 음주 중에 만나기도 한다. 이 전통은 오래 된 것이다. 음주 채팅, 음주 리플링을 거쳐 이제는 음주 블로깅 혹은 음주 포스팅이 된다. 어떤 때는 세상이 술에 취해 돌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술에 취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하지만 부끄럽다. 음주 후 마음 내키는대로 글을 쓰고는 아침이 되어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김명국이야 그림을 그려주고 다시 그 그림을 보지 않아도 되지만, 블로그를 쳐다보지 않을 수 없는 나이기에 그렇다. 음주 포스팅을 하고 사나흘 정도 내 글을 보지 않다가도 다시 찾게되는 게 블로그다. 내 꺼니까.

술 먹고 글을 쓰면 엉터리 중구난방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나를 억누르는 기제들이 많이 사라지는 것도 사실이다. 접점은 어디일까? 중요한 것은 김명국이 살던 시대나 고은이 살던 시대와는 또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술 먹고 하는 말도 옳은 말은 옿은 것이다.

風茶雨酒라.

비가 오길래 핑계삼아 술 먹고 한 번 적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