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천재면 뭐하나?

olddj 2009. 9. 7. 00:54

그림을 잘 그리던 노래를 잘하던 뛰어난 두뇌를 가지던 ‘천재’는 있다. 노무현의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보면 김대중을 천재로 표현한 게 나오는 데, 정말 그는 천재였다. 엊그제 <한겨레>에 보니 김대중 노무현 시대 8년간 연설문을 담당하던 사람 인터뷰가 있던데, 그는 노무현을 천재형으로 분류하는 것 같더라. 구술한 원고를 슬쩍 읽고 팍 엎어 놓는대나 뭐래나 (정확히 기억하는 표현은 아니다. 난 천재가 아니므로…).

무슨무슨 ‘3대천재’이야기는 끊임없이 인구에 회자되게 마련이다. 이를테면이광수가 들어 있는  ‘조선의 3대 천재’라든지, 천정배가 들어 있는 ‘목포가 낳은 3대 천재’라든지, 정운찬이 들어 있는 ‘경기고 3대 천재’ 따위가 그것이다. 머리로 따지자면 참 뛰어난 인물들이 많다. 우리나라는 아직 암기 위주의 머리를 많이 쳐주는 형편이라, 암기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보면 참 부럽기까지 하다.  이른바 고시라는 것도 전부 암기력 테스트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어학능력이라는 것도 따지자면 암기력의 문제다.

하지만 고은의 예를 보면, 이 사람은 자기가 지은 시조차도 제대로 외우는 게 없다고 한다. 역사를 외우는 것과 시를 외우는 것은 별개의 것이긴 하지만 의외다. 이 사람은 외국에 가서 우리말로 주욱 낭송을 해도 외국인들이 기냥 눈물을 줄줄 흘린다던가(아, 티비에서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천재도 가지가지다.

어떤 천재들은, 예컨대 논어에서 끌어오는가 싶더니 무라카미가 나오고 결국 듣보잡 구석쟁이에 있는 어느 낯선 인간의 먼지까지 털어서 자기의 주장을 한다. 우리 둔재들은 그러려니, 그 말이 맞겠거니 할 수밖에 없다. 대체로 이어령류의 천재들이다. 사실 이어령이 요즘 시대에 다시 난다면 그 젊은 나이에 김수영과 싸울 수나 있었을까? 이어령이나 김우창은 너무 젊었을 때부터 ‘석학’었다. 의역으로 해서 그 옛날 남이는 20세에 천하를 칼갈아 마신다고 했지만, 너무 간단하게 이들에게 ‘천재’라는 칭호를 부여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정운찬이 총리가 되었다. 어쩌면 천재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 비평준화 시절 그 어렵다는 경기고에서 천재 칭호를 받을 정도면 그 위상은 가히 하늘을 지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이 들린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가 ‘천재’냐 아니냐가 아니다. 다만 기본에 충실한 총리가 되었으면 한다.

김대중이 말했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에 관한 이야기다. 그건 일단 기본의 문제다. 중용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지. 내가 회사생활 할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얘기가 ‘기본에 충실해라’는 거다. 아무리 술이 떡이 되더라도 설거지 할 타이밍에는 설거지를 해야하고 고개 숙일 때는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반대일 때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아야 한다.

김구나 김대중이나 노무현은 천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바보였다. 비운의 죽음을 맞았던 근현대사 주인공들이 천재가 어디 있었나. 다들 바보였지. 요즘들어 생각에 1971년에 김대중이 당선되었다면 분명 불운한 죽음을 당했을 거라는 역사의 가정을 해보곤 한다. 그 전 신익희, 여운형, 조봉암…. 다 마찬가지다. 역사는 내 생각대로 흐르는 것도 아니오, 쉽게 쉽게 흐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과연 정운찬은 ‘천재’가 아닌 ‘기본에 충실한’ 총리가 될 수 있을까.

난 비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