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잡담

신채호 수필 ‘실패자(失敗者)의 신성(神性)’ 중

olddj 2009. 8. 14. 13:36
 (전략)

하늘과 다투며, 사람과 싸워 자기의 성격을 발휘하여, 진취 분투 강의(剛毅) 불굴(不屈)등의 문자로써 인간에 교훈을 끼침이거늘, 우리 조선은 그만 김부식의 인물관이 후인에게 전염하여 고금의 실패자는 모두 배척하고 성공자를 숭배하게 되니, 성공자는 아까 말한 바 약은 사람이라. 이제 창졸(倉卒)히 ‘약’의 정의는 낼 수 없으나 세상에서 매양 약은 사람의 별명은 ‘쥐새끼’라 하니, 약은 사람의 성질은 이에서 얼만큼 추상할 수 있도다.

(1) 엄청나는 큰 일을 생의(生意)치 안하며,
(2) 남의 눈치를 잘 보며,
(3) 죽을 고비를 잘 피하며,
(4) 제 입벌이를 자작(自作)만 하여 그 기민함이 쥐와 같은 고로 쥐새끼라 함이라.

아으, 수백 년래의 인물에, 어찌 범이나 곰이나 사자 같은 사람들이 없었으리오마는 대개 쥐새끼들의 주저와 흉계(兇計)에 병축(屛逐)되거나 참살되고, 일군의 쥐새끼들이 사회의 위권(威權)을 장악하여 학술은 독창을 금하고, 정 주 (程 朱) 등 고인(古人)의 종 됨을 사랑하며 정치는 독립을 기(忌)하고 일보 일보 물러가 쇠망의 구렁에 빠짐이라.

실패는 이같이 싫어하였는데, 어찌 실패보다 참악(慘惡)한 쇠망에 빠짐은 무슨 연고이뇨. 니는 나의 전언(前言)에 벌써 그 이유의 설명이 명백하니라.

-신채호 수필 ‘실패자(失敗者)의 신성(神性)’ 중

comment : 몇 달 전 헌책 파는 데서 1000원 주고 산 책이 < 수학능력시험을 위한 필독한국대표수필>인데, 요즘들어 읽고 있다. 눈에 ‘쥐새끼’가 파박 들어와서 유심히 읽었는데, 참 그럴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