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글씨 단상

olddj 2009. 6. 27. 01:24


1999년이지 싶다. 연말에 노무현으로부터 책을 한 권 받았다. knowhow.or.kr에 의견을 개진한 보답이었을 거다. 당시  국가보안법에 대한 의견을 써 주시라는 공지를 보고 가볍게 쓴 글이었다. 몇 줄 되지도 않았다. 사이트가 썰렁하기도 하고 해서 재미삼아 썼던 글에 노무현은 그리 보답했던 거다.

지금은 그 책을 잃어버려 없다. 그 책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좋은 말-그말도 기억나지 않는다- 과 서명이 적힌 안쪽 표지가 어슴푸레 생각날 때 난 빙그레 웃는다. 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당시 각박했던 직장생활 중에 그 책은 내게 ‘가치’에 대해 생각케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 서예가가 노무현의 글씨를보고 ‘못 썼다’고 쿠사리 주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내 눈에 뭐가 씌었는 지 모르지만 난 노무현의 글씨를 참 좋아한다. 아니, 한 줄의 방명록을 쓰더라도 의미를 담고 있기에 그럴 지 모르겠다. 문끼가 있기도 하지만  ‘자제되는 반항끼’ 같은 것이 엿보이기 때문이리라. 체는 다르지만 마치 내가 쓴 듯한 글씨.


글씨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게 서예든 타이포그래피든 잘 쓴 글씨를 보는 건 행복한 일이다. 신영복 선생이 쓴 글씨를 처음 보았을 때, 그 창의력이라는 물건에 아주 놀란 적도 있다. 이철수체도 그랬다. “이들은 천재다.”라고 생각한다. 박광수체에서 느낄 수 없는 깊이가 있다.

며칠 전 명계남의 글씨를 보았다. 펜으로 쓰는 것과 붓으로 쓰는 것은 천지차다. 그렇기에 명계남의 글씨는 농익었다고나 할까? 문끼와 재기가 넘친다. 연습 많이 한 글씨인 것 같은데 그는 겸손을 떤다지.  이런 재기를 가진 재인이 그 재주를 썪였다. 아쉬운 일이다.

지관스님이 비석 글씨를 썼다는 소식이다. 지관스님이 만장을 쓰는 모습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는데, 장長자리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사진에 보면 ‘없’자를 잘못 써서 쌔리 뭉갠 것 같이 썼는데, 참 ‘스님’답다는 생각을 했다.


만장 내용은 별로지만,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생각으로 그를 기리는 것 아닌가. 내용 역시 ‘스님’답다. 약간 날리는 것 같지만 그래도 미더운 글씨다.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