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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5 06:00
타자연습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었다. 그냥 책 보고 친 것들을 모아둘 요량이다.

월북인지 납북인지 모르겠지만 북으로 건너갔던 작가 이태준의 수필집 <무서록>에서 '역사'라는 글을 옮겨 보았다. 

사극이 실제 역사와 다르다고 타박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나도 좀 그랬다-은 요즘도 많다. 이태준은 "영화가 문학의 삽화가 아닌 것을 깨닫고 순수한 영화도에로 진취하듯, 소설은 역사의 해설이 아닌 것을 소설가 자신은 물론, 역사가, 독자, 모두 크게 깨달아야 할 것은 이미 때늦은 잠꼬대다."라고 말한다. 60년도 더 지난 지금에도 무척이나 설득력있고 조리 있는 주장이다.
1944년 박문서관 3판본을 원본으로 하였다고 한다.


 역사

   어제가 없다면 오늘이 이처럼 새로울 수 없다. 어제를 망각하고 오늘에만 의식이 있다면 거기는 암매暗昧한 동물만이 존재할 것이다. 사람은 어제 때문에 받는 구속이 물론 크고 무겁다.그러나 어제 때문에 받는 궤도와 이상理想은 한 아름다운 샘물로서, 크게는 대하로서, 인생의 먼 바다를 찬란히 흐를 수 있는 것이다.

  앞이 막힐 때 우리는 아직껏 걸어온 뒷길을 돌아보는 것은 너무나 수신修身 교과서적인 교훈이다. 사실 우리는 좀더 역사를 읽고 역사를 쓰고 해야 할 때이다. 노신魯迅은 청년들에게 동양 책보다 서양 책 읽기를 권했다. 서양 책은 동양 것보다 좀더 독자를 움직여 놓는다는 것이다. 좀더 동양인은 더욱 청년은 움직여야겠다는 것이다.[각주:1] 언즉시야言卽是也다. 그러나 나는 서양 책보다는 우리의 책을 먼저 읽되 역사를 읽으라 하고 싶다. 역사는 대개 인물의 전기가 중심이 되어 있다. 사적을 남길 만한 인물치고 동적 아닌 인물이 별로 없다. 실제 인물의 생활이요 실제 사회의 사태였던만큼 박력迫力은 물론 심각하다. 청년 교양에 제일과第一課는 역사라야 할 것을 주장한다.

  과거를 기록한 문헌이라고 해서 다 역사가 아닐 것이다. 역사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 십인십색十人十色의 파한기류破閑記流들은 정말 역사의 성립을 위한 소재들에 불과하다. 투찰력이 강한 사안史眼을 가진 역사학자의 손에서 만취일수萬取一收된 연후에 정곡正鵠을 얻는 해석이 첨부된 것이라야 위지謂之 역사자歷史者일 것이다. 한 조각의 문헌을 새로 발견했다 해서, 조그마한 술어 하나에 새 고증考證을 가질 수 있다 해서 발표욕에 작약雀躍할 것은 아니다.

  요즘 '역사소설'이란 말이 있다. 퍽 애매한 말로 작자와 사가史家들을 미로에 이끈다. 인물이거나 사건이거나 역사옛것을 소설화한 것이 역사소설임은 사실인데 소설화시키는 그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소설은 사건에보다 먼저 인물에 있다. 사건이란 인물에 소유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역사에서 찾을 것은 먼저 인물이다. 역사를 소설체로 강의하자는 것이 소설이 아니다. 어떤 인물의 사생활을 찾아 읽기 좋은 전기를 쓰자는 것도 소설은 아니다. 소설은 오직 한 인물을 발굴해서 문헌이 착색해 주는 대로 그 인물의 성격 하나를 포착할 뿐이다. 성격만 붙잡으면 그 성격으로서 가능하게, 자연스럽게는 얼마든지 문헌에 있고, 없고, 틀리고. 안 틀리고 간에 행동시킬 수있는 것이다.
  그것이 소설이다. 그것이 소설이란, 강의나 전기가 아니라 창작이라고 지칭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역사에서 나온 인물은 한 인물이되, 열 작가면 열 작품으로 나타날 것이다. 거기에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역사 그것으로 그친다면, 학문으로 그친다면 문헌에 매여야 하고 고증에 국한되어야 한다. 그러나 작가는 창작가다. 학자와는 달라 문헌에 대한 의무가 없는 것이다.의무가 없다기보다 문헌을 신용하지 않는 것이다. 역사란 학문은 문헌의 정리다. 소설은 인물의 발견이다. 발견이되 어디까지 자기류의 발견이다. 그 인물의 진실한 그 당시의 현실을 찾기에는 모든 문헌은 너무나 표현이 비구체적인 것이다. 게다가 이조실록 같은 것은 예외요 모두 무책임한 인상기印象記가 거의 전부다. 황진이에 대한 문헌도 십인십색이다. 모두 황진이는 보도 못하고 죽은 지 오랜 뒤에 전하는 말이 하 흥미가 있으니까 제 흥미 정도에서 적은 것이다. 이런 기록을 덮어놓고 암송해 가지고 이 소설은 역사와 틀리느니 안 틀리느니 하는 것은 역사의 예과생豫科生이다. 더욱 예술에 있어선 영원히 문외한이다. 소설가는 역사의 해설자는 아니다. 영화가 문학의 삽화가 아닌 것을 깨닫고 순수한 영화도映畵道에로 진취進就하듯, 소설은 역사의 해설이 아닌 것을 소설가 자신은 물론, 역사가, 독자, 모두 크게 깨달아야 할 것은 이미 때늦은 잠꼬대다.
  그러므로 역사소설도 소설일진댄, 그 비평이 문예평론가의 영역에 있을 것이지 사가史家나 학자의 평론권評論圈 내에 던져질 바가 아닌 것이다. 최근에 역사소설이라 해서 사가나 학자의 입장에서 감연히 소설에 주필誅筆을 휘두름을 본다. 우리는 그 자신의 희극오로밖에 더 찬상讚賞할 수 없는 것이다.

  역사란 아름다운 인류의 강물이다. 좀더 정확하고 좀더 구체적이고 좀더 아름다운 기록이 얼마나 필요한 것일까.


이태준 <무서록> 중

  1. 이 문장은 해석이 잘 안 된다.(옮긴이 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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