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현실과 패러디를 혼동하는 단계

olddj 2008. 11. 21. 23:50

어제 <다음 아고라>에 퍼날라진 한국일보 서화숙의 칼럼을 읽으며, '아~, 이건 장난으로 재미삼아 쓴 글이구나'하고 생각했다. 비현실적인 설정과 군데군데 비꼬는 듯한 투가 보였기 때문이다. 또, 소식을 전하는 데 잘 쓰지 않는 표현들이 많이 섞여 있고, 사실이라면 기사를 통해 특종할 수 있는 내용이기에 굳이 칼럼에 싣지는 않았으리라. 더구나, 제목이 주제를 규정한다고 보면 더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그런데 패러디를 진짜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오마이뉴스> <조선일보>인터넷 따위에 기사화되고 민주당은 관련 브리핑까지 준비했었다고 한다. (기자협회보)

물론 한국일보나 서화숙이 어느 정도는 의도적으로 패러디임을 밝히지 않은 것 같다는 의심은 할 수 있다. 논란 마케팅의 일종으로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인터넷이라지만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예컨대, 서화숙이나 한국일보에 전화 한 통 해보지 않고) -기사화하고, 정당에서는 브리핑을 준비했다는 건, 참 한심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이명박이 취임한 이래 너무도 기상천외한 일들이 많이 생기고, 거짓이나 여론 호도성 발언들이 난무하기에 충분히 속을만도 했다는 거다. 이를테면 대통령이나 장관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이라고 믿기에 어려운 것들이 너무 많았다. '값싸고 질좋은 소고기'류의 멘트, 스왑 체결 후의 공치사 같은 것들 말이다. 뻥은 또 얼마나 많이 쳤는가. 청와대 '핵심관계자' 역시 진실은 이야기하지 않는게 습관이 된 듯 했다.

오늘 페루에서 이명박은 국내 환율 폭등 소식을 전하며 '정부가 개입하지 않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외환은 건드리면 안된다. 가만히 있어야지"라며 "경제는 내버려둬야 한다. 충격을 주면 안된다"는 입장을 개진했다고 한다. 사실 난 이게 패러디인 줄 알았다. 아까 어떤 보도를 보니, 오늘만 해도 4억 달러 정도의 외환개입이 있었을 거라는 외환딜러의 분석이 있다. 그러니 충분히 패러디 기사로 오해할만 하지 않는가.

패러디는 때로 환타지다. 이 정권에서 뱉아내는 소리들은 때로 현실에 전혀 없을 것 같은 일들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좋은 의미의 환타지가 아니라 어찌보면 역(逆)환타지, 나이트메어다.

지금 이 정권의 진화 단계는 '패러디가 현실로 혼동되는 단계'다. 시장이 공포로 가득하니 누구의 어떤 말에도 혹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나아질 기미는 커녕 더 큰 불신들이 쌓이고 있다는 것이다. 747은 혹시 주가지수를 일컫는 패러디가 아니었을까? 3000은 환율 수치의 패러디가 아닐까? 이런 패러디  아닌 패러디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건 진짜 공포다. 난 펀드도 없고 주식도 없는데도 그렇다. 어짜피 내게도 영향이 오리라는 걸 잘 알기에.

딴지일보가 처음 나왔을 때 그 패러디에 참 많이 웃었다. 냉소이건 실소이건 파안대소이건 간에 말이다. 그러나 이명박과 그 졸개들이 뱉어내는 패러디는 너무 섬찟하다. 하루하루가 악몽 속에 사는 것 같다. 그렇잖아도 난방비 아낀다고 보일러를 안 틀어 추워 죽겠는데, 패러디가 나이트메어로 변하고 그것이 다시 현실이 될까 공포스럽다. 그래서 이 초겨울 밤이 더욱 추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