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유감

밴댕이 소갈머리 중앙일보 사설

olddj 2007. 10. 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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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일행이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도라산에 도착했을 때, TV 생방송을 보았다. 거기서 대통령은 '개혁개방이라는 용어는 정부에서부터 사용하지 말아야겠다'는 내용의 말을 했다. '역지사지'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역지사지'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면서도 그 실행에는 무딘 측면이 많다. 특히 남북관계에서 찌라시 언론들이 취하는 태도는 지극히 이기주의적이고 정치적이다. 밴댕이 소갈머리가 따로 없다.

적대적인 관계에서는 상대편을 자극하기 위해 상대가 기분 나빠하는 말을 일부러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이냐 아니냐에 관계없이 손학규가 사용한 '경포대'라는 용어 같은 것들이다. 또, 제3자인 경우에도 그 대상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용어를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다. 외국 언론이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 운운하면 해당 국민들은 기분 나쁠 지 모르나, 어쩔 수 없는 일아닌가. 사실이니까.

하지만 상대가 대화와 신뢰 구축의 대상일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6자회담 석상에서 힐이 김계관에게 '악의축' 운운한다면 어찌될 것인가는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말이다.

북한이 남한을 '공산화'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지 않는다. 그게 '원칙'이라고 내세우지 않는다. 그 속뜻이 어디 있던간에 상대를 어떻게 '---화(化)'시킨다고 하는 말은 상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일 수 있다. [각주:1]

오늘 중앙일보 사설 '이 정권의 대북 저자세, 어디가 끝인가'는 역지사지의 뜻을 모르는 얄팍한 소인배의 말장난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한 북한이 남한 언론에 불신을 갖는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것이다. '기자가 아니라 작가'라는 등 김정일의 조롱을 들어도 싼 것이다.

모쪼록 중앙일보는 10여년 전 중앙일보의 주선으로 북한을 방문했던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책 <나의 북한문화유산 답사기> 수준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80년대 수준의 사설을 쓰고 있는 중앙일보가 90년대 말 수준으로 따라 오려면 약간 벅찬 일일런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리선생은 학문태도 또한 치밀한 연구자의 풍모가 있어 유물의 제작연도는 물론 날짜와 숫자, 크기까지 다 외고 있었다. 더욱이 그는 50년 만에 남한에서 찾아온 이방인 아닌 이방인을 위해 문화유산에 대한 남한측 학술용어를 모두 알아두고 있었다.

나 또한 북한을 방문하기에 앞서 북한의 고고미술사 용어를 많이 익혔다. 그리고 현지에서 말할 때면 되도록 그쪽 용어를 써주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리선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와 리선생이 대화할 때면 나는 북한용어로 묻고 그는 남한용어로 대답하는 진기한 현상이 일어나곤 했다.

평양 시내 다음의 답사일정은 동명왕릉과 진파리 고분떼, 그리고 동명왕릉을 지은 절인 정릉사로 잡혀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묵고 있는 초대소 별채 현관에 출발자들이 집결하는데, 잠시 틈을 타 답사자료를 확인하고자 리선생에게 물었다.

 "리선생, 진파리 무덤은 내부구조가 돌간흙무덤이죠?"
 "네, 그렇습니다. 석실봉토분입니다."
 "천장 구조는 삼각고임으로 되었겠죠?"
 "네, 말각조정법입니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고 있자니 중앙일보사 통일문화연구소 식구들과 조선 아태평화위원회 사람들은 곁에서 들으면서 "문화유산 쪽은 민족화합이 아주 잘되는구먼"하면서 기쁜 웃음을 던졌다. 아무리 체제가 다르고 사는 방식과 언어에 차이가 생겼더라도 서로 상대방을 이해할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통하는 것이 민족이고 남북관계인 것이다.

유홍준, <나의 북한문화유산 답사기> 86~87쪽, 중앙M&B, 1998



  1. 아프간 피랍사태를 통해 알게된 것이지만, 이슬람 국가에 '선교'하러 간다고 하면 입국도 안 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