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유감

국민의 알권리와 인권때문이라고?

olddj 2007. 8. 18. 08:15

"그런데 다음날 아침, 집에서 받아본 신문에는 내 기사가 없었다. 정부의 ‘보도지침’에 겁먹은 사회부 데스크가 기사를 넣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 다른 조간신문에서도 그냥 변사기사만 실렸기에 ‘물 먹은 것’(낙종·落種)은 아니었지만 역사에 남을 특종을 놓친 것이다. 그리고 석간인 동아일보가 ‘폭행 사실’을 그날 오후 특종보도함으로써 소위 ‘고문 정국’의 문은 열렸다. 전날 중앙일보 기사(변사 기사 : olddj주)를 쓴 사람이 신성호 기자였고, 다음날 동아일보 기사는 황호택 기자가 썼다." <주간조선 2006.01.16. 1888호, 신재민 당시 한국일보 기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도 같다.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며 형식적으로 2명을 구속했다. 그렇게 지날 뻔 했는데 그해 수배를 피해 다니던 김정남(문민정부 교육문화수석)씨가 사제단에 연락했다. 구속돼 있던 이부영씨가 박군 고문치사사건은 조작 은폐됐다고 메모를 전했는데, 사제단이 꼭 공표하면 좋겠다고.

두렵기도 하고 망설여졌다. 또 다시 구속되면 어떻게 되나. 여러 가지 고민과 함께 착잡했지만 자료를 모아 준비했고, 돌아가신 유현석, 황인철 두 분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하고 조심스럽게 김수환 추기경께도 설명 드렸다.

그러던 차, 김정남씨가 면책특권이 있는 신민당 국회의원을 통해 국회에서 발표할 것이라고 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다는 소식을 또 전해왔다. 이에 고영구 변호사 부인이 가져온 편지를 갖고 김승훈 신부를 찾아갔다. 신부님이 아주 기쁘게 “내가 십자가를 지겠다”고 해서 5월 광주항쟁 7주년 미사 때 발표했다.

처음 발표했을 땐 기자들도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면 외면했던지. 3일 뒤 동아일보에서 다섯줄인가 언급했는데, 아 이제 됐구나 하는 확신을 가졌다.

<"6월항쟁, 일부 정치인 아닌 이름없는 국민의 승리"
내일신문 2007-06-13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함세웅 신부 인터뷰 중  >


재벌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소식이 25일자 상당수 언론사에 보도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해당 기업의 이름도 직접 쓰지 못하고 익명으로 처리했다. 조선일보만이 H그룹의 김모 회장이라고 표기했고, 이날 오전부터 인터넷 머니투데이가 한화그룹이라고 실명을 밝혔을 뿐이다. <미디어오늘, 한화 김승연 회장 '폭행', 익명보도한 이유는, 한화 "익명요청"… 기자들 "사실확인 안돼"  2007년 04월 25일 (수) 14:13:16>
 

# 왜 한달 보름 지나 보도됐나

이 사건은 지난 3월8일에 발생했다. 하지만 4월24일 연합뉴스에 첫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왜 이런 시차가 있었던 것일까.

사건 발생 직후부터 증권가와 언론 쪽에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여의도 증권가에 나도는 정보지(속칭 ‘찌라시’)에 김 회장 보복 폭행 건이 거론됐고, 한국일보와 국민일보, MBC, KBS 등이 이에 대한 첩보를 입수했거나 제보를 받았다.

사건 발생 나흘째인 3월12일, 이와 관련된 제보를 받은 한국일보의 한 기자는 사건 현장이었던 서울 북창동 S술집의 조모 사장을 만났다. 조사장 지인의 상가(喪家)에서 직접 폭행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들었다. 그러나 조사장이 “한화측의 합의 요청이 있고 나도 이 건을 덮고 가기로 했다”며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요청하는 바람에 보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민일보 역시 제보를 받은 뒤 2~3일 취재를 시도하다가 사건 당사자들이 모두 부인하는 바람에 중도 포기했다. MBC와 KBS 역시 사건 취재를 시도하다가 당사자와 경찰 모두 확인을 해주지 않아 기사화하지 못했다. 이 사건을 취재했던 언론사들은 피해자와 한화측이 모두 언론 보도를 원하지 않은데다, 경찰이 ‘모르쇠’ 작전으로 나오는 바람에 보도하는 데 실패했다.

당시 서울시 경찰청 출입기자 사이에서도 이런 첩보 내용이 나돌았지만, ‘워낙 황당하고 소설 같아서’ 기사화해야겠다는 생각은 대부분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연합뉴스가 처음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연합뉴스 공병설 시경 출입기자는 “타 언론사에서 이 사건을 접하고 어느 정도 취재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사건을 제보 받은 즉시 취재에 나서 4월24일 기사를 썼다”고 말했다. ‘모대기업 회장이 자신의 아들이 술집에서 폭행당하자 경호원 등을 동원해 보복성 폭력을 휘둘렸다는 첩보가 입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내용이었다. 이 보도가 나오고 사흘 뒤 4월27일 한겨레신문이 김 회장의 실명을 거론한 뒤 그가 직접 폭력에 가담했다고 보도하면서 사건은 확대됐다.

한화측은 경찰이 이번 사건을 언론에 제보한 것으로 보고 있는 분위기다. 한화의 한 관계자는 “사건 발생 이후 경찰이 사건 관련자들을 내사해왔다”며 “경찰 관계자가 언론에 제보한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늦게 제보를 접한 연합뉴스가 기사를 쓸 수 있었던 것은, 경찰이 내사(內査)를 했던 내용인 ‘3월28일자 경찰 첩보보고서’를 입수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리 취재에 나선 언론사들은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지만, 연합뉴스의 경우 경찰이 작성한 문건이 있었기 때문에 김승연 회장의 실명만 공개하지 않고 사건의 내용을 보도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조선일보 자기들은 언제 알았는지 어떻게 취재했는지 쏙 빠져 있다. : olddj 주)
<조선일보, [Why?] 김승연 회장 사건 세간의 궁금증을 풀다 중, 입력 : 2007.05.04 23:03 / 수정 : 2007.05.05 14:33>

주장에 논거가 부족하다

중앙일보는 오늘자 사설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로 가는 도화선이 됐던 19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올해 세간의 화제가 됐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경찰이 숨기려 했던 것을 언론이 끈질기게 추적해 진실을 밝혔다는 점이다."

두 사건의 경우 언론이 사건 은폐·축소에 동참하다가 대세를 이기지 못한 전형적 사건이다. 눈치보다가 한 언론사가 총대를 매고 나서면 그때서야 주섬주섬 보도했다는 것.  다른 것이 있다면 전자는 독재권력의 힘이 작용해서이고, 후자는 자본권력이 작용했다. 위에 내가 대충 뽑아 인용한 기사들만 봐도 빤한 걸 왜 사기치는지 모르겠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경찰 간부들의 김승연 한화 회장 보복폭행 축소·은폐 사건과 같은 일이 또 있더라도 이제는 알기 어렵게 된다. 지금도 종종 벌어지는 경찰의 인권침해와 각종 비리에 대한 감시는 더욱 힘들어진다."

<한겨레>는 중앙일보와는 달리 이런 말할 자격은 되지만 논거가 부족하다. <한겨레>가 심층 확인취재하고 실명보도한 김승연 사건의 경우, 기자실이 있었는데도 한 달 보름만에 보도되었다. 취재의 대부분은 경찰서 밖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기자실이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취재가 늦어진 배경이라고 본다.

인권에 관련해서 도하 각 신문·방송에서 많이 드는 예가 국가인권위원회의 통계다. "2001년 11월부터 올 7월까지 인권위에 접수된 인권침해 진정사건 2만762건 가운데 경찰을 대상으로 한 사건이 4,597건으로 2위를 기록한 데 이어, 이 가운데 실제 인권침해 행위가 있었다는 판정을 받은 사건은 368건으로 단연 1위였다"는 것. 하지만 기자실의 존속 여부가 경찰의 인권침해 방지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그 논거가 확보될 것이다. 그 통계는, 차라리 기자실 (없어진다면 브리핑실, 송고실) 예산을 없애고 그걸 국가인권위원회에 배정하는 것이 더 낫다는 논거에 쓰일 만 하다.. 그리고 각 신문·방송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을 더욱 높이는데 주력하여 보도해야 할 일이다.

경찰을 두둔하기 위함이 아니다. 경찰이 추진하는 자체 방안에 문제점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기자실 존속의 필요조건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너희들의 리그 - 기득권?

지난 7월 13일 경 청와대와 언론 4단체간에 발표문을 내는데 합의 직전까지 갔던 취재지원 선진화방안 협상이 기자협회 특위(이 특위의 장이 KBS미디어포커스를 진행하는 박상범)의 추인을 받지 못해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정·언관계 발전의 계기로 삼겠습니다(청와대브리핑)> 이에 기자협회 이외의 단체들, 그 중 인터넷 기자협회 같은 곳은 저속한 표현으로 하자면 완전 바보 되고 말았다. <기자실이 메이저언론 기자만의 공간인가(오마이뉴스>  그래서 이번 ‘경찰 취재봉쇄’(그들의 표현이다. : olddj 주) 반대성명서 참여 언론사는 기자실의 혜택을 받는 것으로 보여지는 17개사이다. 문화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중앙일보, 서울신문, 한국일보, 연합뉴스, MBC, KBS, CBS, 한겨레, 국민일보, 세계일보, SBS, YTN, 내일신문.

'사쓰마와리'라는 낱말은 일제의 찌꺼기로 '경찰기자'를 뜻한다. '나와바리'는 '구역'이라는 뜻 쯤 되겠다. 아무리 이 낱말들이 순화되어 우리말로 불려질 지라도, 기득권 기자들의 의식 속에서 이 식민 잔재 '개념'이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거지가 겉옷만 바꿔입고 신사인체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 사태에 기자들이나 언론사가 얼마나 지지를 받을 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기자들은 경찰의 조치에 성명을 발표하기에 앞서,  딴나라당 애들하고 술 먹고 행패부리고, 갓 입사한 수습기자에게 폭행, 폭언하고, 무고한 경찰에 엿먹이는 행위 등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다수대중의 지지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득권 언론 기자들은 '국민의 알권리'나 '인권'을 변명삼아 이야기하기 전에 최소한 '알권리'에 대한 개념을 정립했는지, 스스로 '인권'을 얼마나 존중했는지 생각해 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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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 기자가 코리아나호텔 직원 '낭심'을 걷어차는 모습(왼쪽)과 얼굴을 가격하는 장면. 피해자 안만옥씨가 핸드폰으로 촬영했다.   ⓒ <오마이뉴스> 안만옥씨 제공 (위 링크 기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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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언론사 사건팀 수습교안(<한겨레> 위 링크 기사 중>

신문·방송을 보는데, 도대체가 설득력이라고는 하나없는 '국민의 알권리'와 '인권'을 참칭하길래 나도 '꼭지가 돌아서' 한 번 써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