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유감

언론의 수준, 국민의 수준 - 아프간 취재를 허해야 한다

olddj 2007. 8. 14. 07:45
기자가 못가는 데가 어디있나?

……우리의 경우 카이로에 지사를 두고 있는 연합통신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지역에 관심을 두는 언론사가 드문 형편이다. 고작 사건이 터졌을 때 뒤늦게 취재팀을 파견하느라 열을 올리는 것이 보기 안타깝다.
한국 언론의 중동에 대한 관심은 우리가 길을 지나다 싸움 구경을 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자기 폄하일까. 싸움이 왜 나는지, 무엇이 걸려 있는 싸움인지, 그리고 이들이 타협할 가능성은 있는 것인지도 별 관심거리가 아니다.
……
필자의 경우, 이른바 수행 취재보다는 단독 스트레이트 취재를 많이 다녔는데 기자 생활 10년에 절감하게 되는 것은 전문 기자의 필요성이다. 국제 문제에 있어 이런 경향은 더욱 심각하다. 국내 기사의 경우 부처마다 발표와 브리핑이 비교적 관례화되어 있어 웬만하면 큰 '물'은 먹지 않게 된다. 그러나 국제 기사의 경우 지금까지 한국의 위상을 반영하듯 기사 자체를 크게 다루지 않는 데다 전문가가 제대로 없는 실정이다보니 기사의 수준이 외신에 크게 의존하게 된 것이다.
한국 언론사의 국제부 기자가 해외 취재 현장에서 외국 기자들을 만나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취재력을 갖추려면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까. (1996년 1월 10일)
['MBC 이진숙 기자의 취재수첩' 340~341쪽, 1996년 7월, 도서출판 최정]

……타임은 한국 정부가 지난 6월 김선일씨 참수 사건 이후 안전문제를 이유로 한국 언론에 보도자제를 요청했고 한국 언론들은 이에 부응하고 있다며 "그러나 한국 국내에서는 이라크 파병이 논란에 휩싸여 있으며 자발적인 보도자제는 이 문제가 더욱 큰 정치적 이슈가 되지 않도록 막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디어오늘>  "정부 보도자제 요청에 부응하는 한국 언론" 2004. 8. 3]

한국군 파병지역인 이라크 아르빌 현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김영미 PD는 22일 오전 위성전화를 이용한 통화에서 "신문과 방송이 모두 국방부 보도자료만 보고 기사를 쓸 것이 아니겠느냐"며 "그렇게 된다면 전 신문은 '국방일보'가 되어가고, 방송 보도는 '배달의 기수'화 되어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디어오늘> "파병 보도 '배달의 기수'화 될 것" (김영미 pd 전화 인터뷰) 2004. 9.22]

일본은 각종 언론 기자들이 300명 정도가 이라크에 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단지 사명감에 불타는 프리랜서 PD 김영미씨만이 머물고 있는데 그도 10월 초면 돌아 올 것이라고 한다. 10월 초면 우리나라 기자단이 5박6일인가? 정도해서 이라크 '투어'에 나선다고 한다. 그때가 되면 나올 기사들은 또 안봐도 비디오다.
[<안티조선 우리모두>에 썼던 글 대한늬우스시대로의 회귀 2004. 9.29]

이번 한국인 인질 사태는 언론에게 결국 지속적인 취재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절감케 한다. 이번 사건을 비교적 신속하고 정확하게 보도해 주목을 받는 <아프간이슬람통신>(AIP)은 탈레반 내부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에 본부를 둔 이 통신은 전화와 인터넷을 통해 가즈니에 있는 탈레반의 움직임을 아프간 안에서보다 더 정확하게 전달한다. 언론 보도도 이제 전선 없는 전쟁터가 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겨레> “한국사람 문제인데 왜 한국기자 안보이나?” 강경란 pd 2007. 8. 7)

기자가 못가는 데가 어디있나?

이진숙 기자가 1996년에 지은 'MBC 이진숙 기자의 취재수첩'이라는 책이 있어 다시 펼쳐 보았다. 참 매력있는 사람이다. 알다시피 이진숙 기자는 이라크 개전 당시 본사에 알리지 않고 카메라 기자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라크에 다시 들어갔던 사람이다. 그때 티비로 그 화면을 보면서 참 멋있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어보면 원래부터? 멋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분쟁지역 취재로 잘 알려진 강경란 pd(지금 아프간 현지에 있는 유일한 한국 언론인이다.)나 김영미 pd도 그렇다. 그들을 보면 '기자(pd)가 못 갈 곳이 어디냐'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래서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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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당시 <미디어오늘>의 기사를 키워드 '김영미'로 검색했다. 당시 아주 관심있게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이라크에서 우리 언론인들이 철수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이야기했던 기사가 많았던 걸로 기억.


무엇이 '선진언론'인가?

노무현은 “민생은 정책에서 나오고 정책은 정치에서 나옵니다. 정치는 여론을 따르고 여론은 언론이 주도합니다. 언론의 수준이 그 사회의 수준을 좌우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언론이 먼저 선진언론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하지만 이라크 취재에 대한 언론 통제에 이어 아프간에 가려는 취재 기자들을 막은 정부의 행위는 도무지 저 말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선진언론이 되려면 분쟁지역 취재, 특히 이번 아프간 피랍 사건의 경우에는 등 떠밀어서라도 가게 해야 한다. 위험요소는 정부와 언론이 서로 협조해서 최대한 줄이면 된다. '선진국' 기자들은 왜 거기에 있는가?

지난 번 칠레에서 동계올림픽 유치 투표가 임박해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나온 한국대표단의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던진 3명의 기자들은 모두 러시아인 기자였다. 평창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그들을 보며 앞서 끝난 러시아 대표단의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 기자들은 어떤 질문을 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뒤에 확인해 보지 못하였으나, 그렇게 기자들이 현장에 있다는 것, 그 현장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 하다못해 질문 하나 던지는 것도 모두 그 나라의 위신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라크전에 있어서 보도 통제에 대한 타임지의 비아냥이나 김영미 pd의 안타까워하는 모습, 이번 아프간에서 강경란 pd가 들었다는 "한국 사람 문제인데 왜 한국 기자 안보이나?"라는 후진국? 사람들의 측은지심이야말로 국가수반으로서 쪽팔려해야 할 일 아닌가.

우왕좌왕하며 주접떠는 한국 언론


  이번 전쟁은 미국 내 여론보다는 국제적 여론이 훨씬 중요한 전쟁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그 상대는 미국에 버금가는 전쟁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매우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 테러라는 것 자체가 고도의 여론 전쟁 기법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부시 정부는 매우 어려운 상대를 만난 셈이다. 걸프전 당시 국제적 홍보전을 위해 CNN을 이용하였던 이라크의 후세인 역시 대단한 국제 홍보 전문가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서구 언론을 배제한 채 알자지라라는 아랍계 24시간 뉴스 방송 채널을 능숙히 이용하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세계 여론을 놓고 미국과 겨루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치열한 경쟁 환경 속에 있는 언론 기관들은 이들이 다루기에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닌 듯싶다. [전쟁 저널리즘의 몇 가지 쟁점들 - 이라크전쟁 보도를 중심으로, 안민호 (숙명여자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교수) 2003년 6월 27일~28일 이라크전쟁과 언론보도 세미나 中)]


나도 이번 사태가 생기고 지난 7월 말에 검색하다가 알게된 것이지만 탈레반의 선전술이나 언론을 다루는 능력은 참으로 놀라운 구석이 있다. 애초부터 전략적 대응이니 인질의 생명 보전 및 석방을 위한 보도 형태라는 것이 존재했을지 조차도 의문이다. 더군다나 파병국가이면서 특파원 하나 없는 기괴한 한국 제도권 언론의 직무유기는 기가 막힐 따름이다. 초기 보도를 보면 현지에 기자가 있고 없고가 얼마나 큰 차인지 짐작할 수 있다. 철분이 부족한 골다공증 환자가 비만이 겹친 모습이다. 그 직무유기의 결과로 어쩔줄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본질을 벗어난 논의에도 무기력할 뿐이었다. 기껏 한다는 것이 외신이 왜 오보를 하는가 분석해서 가르쳐 주더라. -_-; 그나마도 잘 못 믿겠더라는...ㅠㅠ 어제 아침 <한겨레>에 그 돌아가는 사정을 이야기한 기사가 났는데, 그나마 <한겨레>만한 신문도 없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아프가니스탄은 동의 ·다산부대가 파견된 곳인데도 불구하고, 공영방송이며 가장 규모가 큰 언론사인 kbs도 별다른 현지 취재원조차 없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기껏해야 탈레반이 전화를 해서 인질과 통화시켜주겠다는 것을 거부한 것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공영방송'이다. 그걸 잘 했다고 칭찬하는 언론학자도 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김창룡은 그 칭찬 이전에 먼저 언론의 직무유기부터 호되게 질타해야 했다. 그리고 8월 7일부터 발효될 예정이었던 여권법에 의해 출국을 금지시킨 정부에 대해 강력히 항의를 전해야 했다. 그러나 고작 제안한다는 것이 '국내 인질의 안전한 귀환이라는 대의에 정부와 언론의 '기사풀제'라는 신사협정'이다. 하지만 이라크에서 기자들이 철수했던 '신사협정'의 과거가 원죄적 성격을 가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한 두 언론사를 빼고는 상당한 의심을 하고 있다. 혹시 불감청고소원이 아니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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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인지 모르겠지만 기자협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정부에 헌법소원을 내기로 했다는 기사나 엠바고 관련 총리훈령에 대한 성명과 비교해서, 아프간 사건과 관련 IFJ에 서한 발송한 기사나 웬지 자신감 없어 보이는 풀제 도입 관련 기사는 온도차가 있어 보인다. 마치 김창룡의 정부에 대한 대응 태도(취재 선진화방안과 아프간 취재의) 강온 차이를 보는 것 같다. 이 시대에 진정한 기자정신, 언론인의 자세는 무엇인지 착각하거나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독자들이 바라는 '멋있는 기자'의 모습은 오간데가 없고, '꽃길'만을 생각하는는  영악한 기자협회라는 생각을 갖는 것은 나 뿐일까.

◁기자협회보


앞으로가 더 문제다

어제 두 명의 인질이 풀려났다. 그것에 대한 언론 보도의 우여곡절도 많았다. 정부는 이제라도 우리 언론인의 아프가니스탄 현지 취재를 허해야 할 것이다. 풀제가 되었던 개별 취재가 되었던 언론인의 아프간 취재 입국 불허는 없애야 한다. 여권법의 예외조항은 그런데 쓰라고 있는거다. 이 사태가 마무리되더라도 분쟁지역 취재 제한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사태에 우리 기자들이 경험을 쌓지 못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지금이라도, 조금이라도 구축하지 못한다면 '선진언론'과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사실 선진언론 운운하기 이전에 '언론의 격이 떨어진다. 국가가 '언론의 격'을 떨어지도록 강요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그건 노무현이 말하는 국민의 격(수준)과 관계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언론은 자신들의 격이 떨어지는 것을 은근히 즐기면 안 된다. 싸잡아서 미안하지만 더욱 강력히 정부와 싸워야 한다. 엉뚱한 것에 핏대세우지 말고.

그게 진짜 멋진 언론의 모습이 아닐까? "멋이 밥먹여주냐?"고 반문하면 할 말은 없다만.


내 글을 요약해놓은 듯한  글을... 다 쓰고 발견했다.  ㅠㅠ
번역 저널리즘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한겨레21>2007년08월09일 제672호